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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중국에서는 이미 『상서』시대에 ‘족류’라는 말로써 종족을 구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족류’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조선에서 ‘족류’는 ‘아족’을 여진족이나 왜족과 구별할 때 쓰는 말이었다. 그런가 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동포’라는 용어도 자주 등장하였다. ‘동포’는 본래 같은 형제자매를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점차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갔다. 특히 張裁의 『西銘』에서 ‘民吾同胞’라는 말을 국왕은 자주 인용하면서 백성들을 애휼의 대상으로 지칭할 때, ‘동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국왕들은 더 나아가 양반 등 지배층에게 호포제 실시를 요구할 때, ‘모든 백성은 나의 동포’라는 말을 자주 끄집어내었다. ‘동포’라는 말은 1890년대 후반 독립협회 운동 이후 더욱 자주 사용되었고, 그 의미도 확대되었다. 즉 이때의 ‘동포’는 단순히 국왕의 은혜를 입는 백성들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로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또 동포 내부의 평등 또한 강조되었다. 그런 가운데 1906년 이후 국내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본래 ‘민족’이란 상고시대 이래 중국에서는 ‘민의 무리’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를 서양의 folk 내지는 nation의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1890년대 초에 ‘일본 민족’이라는 단어로 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에서도 이를 따라서 양계초가 1903년경에 쓴 글에서 ‘민족’과 ‘국민’을 구별하여 각각 개념 정의를 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도일유학생들은 일본에서의 용례를 따라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지만, 1910년 이전에 그리 용례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1906년 이후 양계초의 영향으로 ‘민족’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하였다. ‘대한민족’ ‘조선족’ 등의 호칭이 만들어졌다. 이는 ethnie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민족’보다 더 많이 쓰인 용어는 ‘국민’이었다. 그것은 한국인이 ‘신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7년 하반기(고종 양위) 이후 대한제국은 형해화되어 갔고, ‘신국민’ 또한 기대난망이 되었다. 여기서 국권회복과 신국가 건설의 주체로 새로 떠오른 개념이 ‘민족’이었다.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도 ‘민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또 국권회복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형성된 ‘민족’ 개념은 그 내부에 평등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었으며, 근대 국민국가 건설의 주체로서 설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근대 민족’, 즉 nation의 의미를 갖는 것이 되었다. 식민지시기 내내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을 독립운동의 주체, 신국가 건설의 주체로 설정하였다.
- 제목
- 한국에서의 `민족` 개념의 형성
- 저자
- 박찬승
- 발행일
- 2007-11-24
- 학회명
- 한국사학사학회 월례발표회
- 개최지
- 대우재단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