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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사회가 서구사회와 접촉한 19세기 후반 이래 서구의 자본주의적 근대 문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한국사회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이 논쟁을 세 가지 이슈를 중심으로 다루어 보았다. 첫째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와 서구의 근대적인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만든다면, 어떤 계층을 중심으로 이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셋째는 근대사회가 자본주의사회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사회라고 한다면 이를 동시에 만들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시차를 두어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첫 번째 이슈는 이 문제로 온 사회가 진통을 겪었던 19세기 말에 초점을 맞추어서, 당시의 동도서기론, 문명개화론, 구본신참론, 변법론 등의 논리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들 주장은 결국 東敎ㆍ東法ㆍ東器와 西敎ㆍ西法ㆍ西器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였음을 확인하였다. 1880년대 동도서기론자들은 서기는 받아들이되 동교ㆍ동법은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문명개화론자들은 서기와 서법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나아가 서교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1890년대 후반 구본신참론자들은 서기는 받아들이되 동교는 지켜야 하며, 법(제도)의 측면에서 구본신참, 즉 동법을 근본으로 하고 서법은 참고를 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변법론자들은 유학의 변통론을 근거로 하여 서법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하지만 변법론자들도 서교보다는 동교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 이슈는 한국사회에서 자본가가 처음 제대로 형성되기 시작한 1920년대에 초점을 맞추어서 당시 전개된 물산장려운동의 목표를 둘러싼 논쟁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는 결국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주체를 어느 계층에 설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임을 확인하였다. 즉 일정한 규모의 자본가가 주체가 된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측과, 소상품생산자가 주체가 된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측이 있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를 지향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자본주의체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고 보인다. 이 이슈는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과정에서 재벌 중심의 산업화냐,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화냐 하는 논쟁으로 연결되어 갔다고 보인다. 세 번째 이슈는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인 근대화가 추진된 1960년대에 초점을 맞추어서 정권을 대표하는 박정희의 산업화 우선론과, 재야를 대표하는 장준하의 산업화ㆍ근대화 병행론을 비교,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 논쟁은 민주주의는 산업화 이후에나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산업화의 과정에서도 가능한 것인가에 그 초점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박정희의 산업화 우선론은 서양의 민주주의도 산업혁명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생산적 중산층(부르주아 계층)이 형성된 뒤에야 비로소 서양식 민주주의를 시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반면에 장준하는 민주주의에는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원리만이 있을 뿐 서양식 민주주의, 한국식 민주주의의 구분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민주주의 유보론, 민주주의 불신론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피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부르주아 계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아직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들의 자각을 돕기 위해 계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두 사람의 입장 차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신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인생역정, 그리고 현실적 이해관계와도 관련이 있었다. 위에서 다룬 세 가지 쟁점, 즉 한국적 전통과 서구적 근대의 갈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의 주체를 어느 계층에 설정할 것인가, 경제성장과 민주화(또는 복지)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이슈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슈들은 쉽게 결론을 얻을 수 없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의 역사 속에서 한국인들은 몇 가지 기본적인 해답은 얻을 수 있었다. 첫째는 자유ㆍ평등ㆍ인권과 같은 가치관은 그것이 비록 서구에서 온 것이라 하더라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으로서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둘째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병행되어야 하며, 빈부격차의 완화, 복지사회의 지향 등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 셋째는 재벌 중심의 자본주의 발전과 같은 경제력의 집중은 결국 IMF 사태에서 보이는 것처럼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매우 상식적인 해답들이지만, 이러한 해답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것들이 아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150년 가까운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얻어낸 소중한 해답들인 것이다.
- 제목
- 개화, 실력양성, 그리고 근대화를 둘러싼 논쟁
- 저자
- 박찬승
- 발행일
- 2005-10-06
- 학회명
- <광복 60년 : 한국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희망>
- 개최지
-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