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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제헌의회가 만든 반민법은 과도입법의원이 만든 특별조례와 비교할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반민법과 특별조례는 그 내용이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다만 특별조례가 “주임관 이상의 관리, 판임관 이상의 군과 경찰 가운데 죄적이 현저한 자”라고 하였던 것과 달리, 반민법은 관직의 고하를 명시하지 않고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라고 하여, 처벌 대상의 범위를 다소 넓힌 점이 다르다. 처벌 방법은 거의 같지만, 특별조례가 ‘민족반역자’들의 경우에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비해, 반민법은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을 몰수한다고 하여 재산형을 보다 강화하였다. 또 특별조례가 부일협력자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0년 이하의 기간 동안 공민권을 정지시킨 것에 비해, 반민법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시켜서 처벌의 강도를 강화하였다. 반민법은 특별조례에서는 없었던 일정 기간 동안의 공직임명 금지조항을 제5조에 넣은 점도 달랐다. 제5조는 “일본 치하에 고등관 3등급 이상, 勳 5등 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의 직에 있던 자는 본 법의 공소시효 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단 기술관은 제외한다”는 규정을 넣었던 것이다. 제헌국회는 대체적으로 볼 때, 과도입법의원의 특별조례에 기초하면서, 이를 다소 강화한 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입법의원과 제헌국회의 구성의 유사성과 차이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입법의원은 미군정에 임명한 중도파 의원들과 민선으로 뽑은 의원들이 섞여 있었다. 민선으로 당선된 이들은 대부분 한국민주당과 독촉국민회 소속인 우익계열이었고, 이들은 특별조례의 초안에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이에 부딪쳐 관선의 중도파들은 크게 양보하였고, 그 결과 특별조례는 크게 완화된 내용이 되고 말았다. 반민법은 많은 약점을 안고 있었고, 이 또한 중간파와 우파간의 타협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헌국회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만든 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제헌국회는 법은 만들었지만, 이를 현실에서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현실의 권력은 이 법의 처벌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이들,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던 이들이 갖고 있었다. 따라서 반민법의 실행기관으로 만들어진 반민특위는 출범 6개월 만에 사실상 활동이 정지되고, 반민법 자체도 공소시효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는 개정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지 1년 만에 그 수명을 다하고 말았던 것이다.
- 제목
- 반민특위법 제정과 `반민족행위자`의 선정기준 논쟁 : 제헌국회의 논쟁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찬승
- 발행일
- 2006-06-02
- 학회명
- 친일, 대독협력과 기억의 정치학(Collaborations et politique de la memoire)
- 개최지
- 한양대 백남학술관 국제회의실